2025. 1. 3. 16:00ㆍ행복한 문화생활 백서

피아노를 좋아라하는 저에게 행운같이 다가온 2025년 첫 공연은 역시나 쇼팽이었습니다. #아라 덕분에 새해 첫날이 지나고 바로 다음 날 이런 호사를 누렸네요. 왠지 올해는 진짜 행복한 한 해가 되려나 봅니다.
편지 콘서트?
라이브 연주와 드라마를 통해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을 재조명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소극장 산울림을 대표하는 '예술적 브랜드'라고 하네요. 지금까지 흔히 알고있던 소극장 연극무대와는 다른 장르입니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등장인물은 딱 두명, 쇼팽과 그의 연인 조르주 상드 뿐이죠. 그리고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무대 뒤 한켠에는 피아노가 놓여져 있어서 각각의 장면에 딱 어울리는, 혹은 그 곡의 영감이 되는 곡들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등장합니다.

별밤지기가 들려주는 뮤지컬 광화문 연가
그때 그 시절 (?) 우리 모두를 라디오 앞에 앉아 귀 기울이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죠. 조용한 밤 하늘 너머로 별밤지기의 마이크를 통해 누군가의 사연이 소개되고 그 내용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노래가 뒤를 이어 흘러나옵니다. 듣는 모든 이들이 격한 공감과 박수를 보내고 진한 슬픔과 연민의 눈물을 같이 흘리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곤 했었다는...
"뭔가 괴로울 때, 난 친구에게 말하듯 피아노에게 말을 겁니다." 라는 쇼팽의 대사로 시작되는 블루노트는 쇼팽과 그의 연인이 지나온 인생에 관한 기록입니다. 마치 별밤지기가 사연을 전해주 듯이 그들의 삶에 있어 큰 변곡점이 되었던 순간 순간들을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무대 뒤편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쇼팽의 피아노곡 9곡은 그 사연이 만들어진, 혹은 배경이 되었던 음악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모스크바 군대의 진격을 피해 폴란드를 떠나는 이야기와 함께 흘러나오는 "혁명", 비를 맞고 쓰러진 연인을 안으며 흐느끼는 쇼팽의 뒤로 들려오는 "빗방울 전주곡",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비극적 순간에 울려퍼지는 "녹턴"... 이 모든 곡들이 단독 리사이틀 때의 감동을 뛰어넘는 깊은 여운을 남기며 탁월한 감정이입을 이끌어냅니다.
클래식과 연극의 만남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장르의 만남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여전히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클래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느끼는 것은 어렵다'라는 편견을 연극이라는 이야기로 완벽하게 보완하고, 자칫 음악적 요소가 부족할 수 있는 소극장 연극을 풍성하고 우아한 클래식 라이브 연주로 완벽하게 재탄생시켰으니 이야말로 최고의 콜라보이자 역발상인거죠.
저의 최애 뮤지컬 '광화문 연가' 혹은 '맘마미아' 들의 공통점은 원곡이 전해주는 이미지와 감동들이 배우들의 연기에 힘 입어 더욱 크게 증폭되고 풍부해져서 커다란 종합선물로 되돌아 온다는 점입니다. 이번 공연은 그런 장점들을 클래식이란 장르에 맞춰서 기가 막히게 우아하고 멋지게 버무렸습니다.

깨알 같은 후기
'반깁스의 투혼'
공연 당일에 발목을 심하게 다치신 자스민2, 다른 참석자들이 모두 참석을 만류했지만 쇼팽을 향한 그녀의 열정을 막지 못했습니다. 마침 앞자리가 비어서 아픈 다리를 살짝 올리고 잘 달래가며 관람했다는 건 비밀?
'산울림에서 3분 거리 키친'
저녁 8시에 시작하는 공연 앞풀이를 위해 모임장 자스민님이 픽한 저녁 식사 장소는 소극장 가까이에 있는 '최고 키친'. 말그대로 최고의 경리단길 뷰를 가진 맛집이었습니다.
쇼팽의 이야기니까 배우가 피아노를 직접?
주인공 쇼팽역을 맡은 류영빈 배우님이 피아노를 연주하긴 합니다. 단, 극 초반에 딱 한 소절만. TMI 하나 더하면, 녹턴을 비롯한 쇼팽의 핵심 연주곡을 라이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히로타' 교수님이 뜬금없이 연기까지 선보이네요. 그윽한 시선처리는 신의 한수?
산울림에서 듣는 피아노 라이브?
예술의 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에서 듣던 피아노 소리와는 다른 진짜 날 것의 소리입니다. 마치 거실에 놓인 피아노의 선율을 바로 옆 식탁에 앉아 기대어 듣는 느낌이네요.
소극장 산울림을 방문할 때 알아두면 좋은 팁 몇가지
- 주차공간이 없고 인근 주차장은 시간당 최소 6천원
- 지하에 위치한 공연장은 쾌적한 편이다. 다만, 고정식 좌석은 다소 쿠션이 얇아서 딱딱하고 좌우 공간이 부족하므로 옆사람과 팔꿈치 싸움을 할 수도..
- 화장실이 협소하므로 공연 전/후에는 절대 비추 (차라리 인근 카페나 식당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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