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7. 23:04ㆍ행복한 문화생활 백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두 기업의 결합을 축하하고, 임직원 여러분들의 화합과 소통을 도모하고자...
뭐 이런 내용으로 회사에서 준비한 [임윤찬 단독 리사이틀] 이벤트에 당첨되서 롯데 콘서트홀을 다녀왔습니다. 이 회사 월급 받아본지 어언 19년차인데 이런 성대한 잔치상을 차려준 건 처음인듯 하네요. 아주 작정하고 생색내려고 이벤트를 기획한 모양인데 왜 하필 임윤찬일까 생각해봤더니 이 슈퍼스타가 작년에 이어 올해 또 한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내고 엄청난 홍보를 하고 있더군요. 이번달 말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12회 이상의 월드투어를 기획한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영에서 딱 한번 연주한답니다. 그러니까 아직 일반에게 공개하지도 않은 곡을 우리 임직원들에게 먼저 들려준거네요. 이런 횡재를 하다니 올해 운세가 대박인 모양입니다.
2024년엔 [쇼팽:에튀드]
기사를 뒤져보니 그의 첫 스튜디오 앨범인 [쇼팽:에튀드] 음반을 발매하고 세계 최고 권위의 클래식 음반상인 '그라모폰 뮤직 어워즈'를 비롯해서 굵직한 상으로만 3관왕을 이뤄냈더군요. 아마 거기에서 탄력을 받은 건지 올해에는 80여분을 쉼 없이 혼자 연주해야 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고 나왔습니다.
2025년은 [골드베르크 변주곡]
바흐의 '건반 2단 하프시코드를 위한, 아리아와 여러 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연습곡'이랍니다. 특히 빈번하게 엇갈리는 양손 주법을 비롯해서 당시 바흐가 쓴 건반 작품 중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곡이라고 하네요. 형식은 아름다운 아리아로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그 안에 서른 개의 변주곡을 넣어 춤곡과 서곡, 푸케타 등 다양한 캐릭터 피스 (화려한 기교의 변주곡)를 표현한 방대한 피아노곡입니다.
임윤찬 버전의 ‘옥타브 올라간’ 골드베르크
일단 본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인트로 격으로 임윤찬과 막역한 한예종 선후배 사이라는 신예 작곡가 '이하느리'의 피아노곡 한곡으로 오프닝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첫번째 아리아를 시작으로 80여분의 긴 여정을 시작하죠. 전 중간에 쉬는 시간도 없이 한 연주자가 그렇게 혼자 달리는 리사이틀 관람은 처음이라 내심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정말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C열 한 가운데 좌석이어서 그랬는지 임윤찬의 표정과 손놀림을 바라보며 저게 겨우 스무살이 된 청년의 몸짓이 맞나 할 정도로 감탄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답니다.
제가 바로 앞에서 직접 보고 들어보니까 왜 어려운 곡인지 바로 알겠더군요. 양손은 서로 교차하며 쉴 틈없이 건반을 채우고 끊임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우리의 감정선을 업치락 뒤치락 흔들어 놓습니다. 변주곡이라는 타이틀답게 분위기가 수도 없이 바뀌면서 광할한 평야와 울창한 숲속, 그리고 깊은 바다 저 편에서 밀려오는 엄청난 파도 속으로 뛰어들게 합니다. 정신이 혼미해진다고나 할까요..
중알일보 관련 기사를 보니 ‘옥타브 올라간’ 연주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7번 변주였습니다. 바흐는 골드베르크의 모든 변주(30개)를 각각 둘로 나뉘도록 작곡했는데 습니다. 즉, A+B 라는거죠. 그런데 모두 도돌이표를 붙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모든 변주는 A+A´+B+B´로 연주하게 됩니다. 다른 피아니스트들은 보통 A와 A´를 큰 차이 없이 연주합니다. 하지만 임윤찬은 A´와 B´를 한 옥타브 높여 연주했습니다. 악보에는 그런 지시가 당연히 없는데 말입니다.
연주가 끝난 후
자리를 일어섰던 임윤찬은 다시 되돌아 나와 2곡의 앵콜곡을 들려주었습니다. 우뢰와 같은 환호성 속에 마지막 곡은 쇼팽의 '녹턴'으로 마무리하고 조용히 퇴장하는 그의 뒷모습은 앞머리를 눈 아래까지 드리우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고 싶어하는 영락없는 사춘기 십대 청년같았습니다. 쇼팽과 바흐를 정복한 천재 피아니스트 역시 무대를 내려오면 우리와 같은 사람인거죠? ㅎㅎ
<리사이틀 순서>
1. Hanurij Lee (이하느리): Round and velvety-smooth blend… (2024)
2. Joha Sebastian Bach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1685-1750)
Aria with 30 Variations, BWV 988 “Goldberg Variations”
(아리아와 30개의 변주곡, BWV 988 ‘골드베르크 변주곡’)
<롯데콘서트홀>
2층 C13열 10 좌석: 2층에 위치한 적당한 거리의 한 가운데
<𝐏𝐥𝐚𝐲𝐥𝐢𝐬𝐭>
임윤찬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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