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2. 16:22ㆍ행복한 문화생활 백서
정범철 작가의 '밀정리스트'
정말 오랜만에 배우와 관객들이 초등학교 교실같은 작은 공간에서 같이 호홉하는 소극장 연극을 관람했습니다. 게다가 <아르떼라운지> 정한상님의 티켓 나눔으로 잡은 기회여서 더 행복했던 시간이었네요. 딱딱하고 좁은 의자들이 겹겹이 자리 잡고 있고, 코 앞에 위치한 어두운 무대에선 쾌쾌한 냄새가 스물스물 올라오던 그런 소극장들은 이제 저의 추억 속에만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연극이 올려진 소극장 '씨어터 쿰'은 새 건물에 자리 잡은 이유도 있겠지만 무대 입구의 주홍 빛 희망나무에서 부터 남다른 인테리어를 뽐냅니다. 이쁜 카페같은 분위기?
이 연극은 2023년 전남 전국 연극제 대상을 비롯한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는 화려한 작품입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이야기가 아주 짜임새 있고 빈틈없이 관객에게 전달되어지면서 90분이라는 시간이 전혀 길지 않게 느껴졌고,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선 호홉마저도 멈출 것만 같은 놀라운 몰입도를 선사합니다. 살짝 눈시울이 적셔지는 주인공들의 마지막 외침은 그야말로 화룡정점!
"우리 안에 밀정이 있다"
이야기는 일본 총독을 암살하려는 5인의 의열단이 거사를 준비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를 의심하며 찾아내려는 갈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과 친일파를 내세우면서 당시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게다가 극 후반부에 나레이션되는 장면에서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밀정의 수가 895명이라는 사실에 약간은 충격..
역시 장르보다는 작품
요즈음 '아라'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새삼 느끼는 깨달음은 '좋아하는 장르' 보다는 '좋은 작품'이 주는 즐거움이 훨씬 더 소중하고 크다는 겁니다. 가입초기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클래식에만 집중하려다 보니 왠지 작품 이해에 대한 사전 준비(?)도 필요할 것 같고, 쉽게 접근하기엔 두려운 진입장벽 같은 것도 느껴지곤 했서 선뜻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라'에서 골라 준 맛깔나는 여러 장르의 웰메이드 작품들을 그냥 믿고 따라 다니다 보니 어느덧 예술을 사랑하는 '일반인'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맛보게 됩니다.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죠.
저는 음악이나 미술 분야 전공자가 아닌 탓에 작품이 이야기하는 심도있는 주제를 보는 능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면 장르와 상관없이 가슴이 따뜻해지는 감동을 느끼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흥분과 희열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라'에서 그 기회를 만들어 주네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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