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신창용의 쇼스타코비치

2024. 4. 27. 16:43행복한 문화생활 백서

베이스 김대영과 노이 오페라 코러스가 함께한 교향곡 [바이야르]

아이돌이 보이는 클래식?

보이는 라디오도 아닌데 클래식 공연에서 아이돌이 보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피아니스트 신창용 이야기죠. 제가 피아노를 좀 좋아하는 '월급쟁이'인데 예술의 전당에서 보이는 요즘 공연 트렌드가 그렇습니다. 아저씨인 제가 봐도 멋지고 분위기 있는데 여성팬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냥 피아노를 잘 치는 'K-클래식을 이끄는 예술 영재'라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엄청난 손가락 길이와 함께 조각(?) 같은 외모에서 벌써 남다른 포스를 보여줍니다. 본인 스스로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고 했다던데 확실히 얼마 전에 KBS를 달구었던 '니콜라이 루간스키' 같은 관록의 명장 포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죠. 

또 한명의 아이돌은 교향악단의 수장인 지휘자 홍석원입니다. 

광주시향이 유명해진 이유가 이 분 때문이라던데 직관을 하고 나니 그 느낌이 확 전달됩니다. 1부에서는 피아니스트와의 교감이 그랬고 2부에서는 베이스 솔로와 합창단을 아우르는 무대 장악력이 아주 남다르던걸요? 순간순간 리듬을 타는 골반의 움직임과 함께 개그맨 박준형을 연상시키는 장난기 섞인 미소가 아주 매력 터집니다. 확실히 클래식은, 아니 공연은 직관만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매력이 있습니다. 

 

광주시향 지휘자 홍성원 vs 갈갈이 박준형

 

드디어 '쇼스타코비치'를 마주하다

예당의 대표적인 축제인 2024 교향악축제에 다녀왔습니다. 계속 근무 스케줄과 맞지 않아서 기회를 날려버릴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아르떼에서 감사하게도 좋은 자리를 주선(?) 해주셨어요. 같이 감상했던 어느 회원님은 축제의 라인업을 보고 찜 해두셨다가 찾아보신다는데 저같이 스케줄 근무하는 월급쟁이는 볼 수 있는 날짜가 정해져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날이 신창용과 함께 하는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으로 시작됐구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는 '한'이 서려있다죠? 그래서인지 흥겨운 행진곡으로 시작하는 협주곡 도입부에서부터 이상하게도 영화 '신들러리스트'에서나 느낄 법한 묵직한 유대인들의 행진이 연상되더군요. 활기찬 행진이 아닌 억압에 항거하는 분노의 행진.. 계속해서 순간 순간 작은북과 함께 폭발하는 피아노의 질주를 보면서도 마냥 재치 있고 활력 넘치는 분위기 대신 '레미제라블' 시작 부분에 나오는 범선의 지하에서 노를 젓는 노예들이 외치는 무거운 울림이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신창용의 신들린 듯한 피아노 멜로디가 그렇게 들렸어요.

 

피아니스트 신창용이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제2번 F장조]


교향곡 제 13번 '바비야르'

개인적으로 클래식 어린이, [클린아]인 제 입장에선 쉽지 않은 교향곡이었는데 5악장이나 되는 길이도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사실 충격적인 것은 '바비야르'라는 주제였습니다. 곡 전체를 아우르며 처음과 시작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바비야르에는 기념비 따위는 없다'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 힘 없이 숨 죽인 시민들의 외침인 거죠. 마치 우리가 뮤지컬 '명성황후'에 열광하듯이 구소련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이 주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뇌관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오롯이 베이스 솔로와 베이스 가수들로만 구성된 합창단, 그리고 초저음을 쏟아내는 튜바 같은 금관악기들을 투입하면서 극대화됩니다. 전 (아미님이 알려 주신) 튜바라는 악기도 처음 봤지만 그 음역대가 가히 상상 이하(?)로 어마 어마하게 웅장하면서도 장엄하고 육중합니다.

 

 '출세'라고 번역 되어진 5악장 'The Career'

갈릴레이를 언급하며 이어지는 가사 내용이 '출세'라는 단어와의 어울리지 않아 갸우뚱하고 있던 찰나에 드는 생각 한 가지, 생전에는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며 진실을 얘기하지 못했지만 사후에 대인배로 추앙받는 것.. 
이건 출세가 아니고 명성아닌가?